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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함부로 말해보면카테고리 없음 2022. 10. 13. 15:00
* 우리실험자들 차이나리터러시 세미나에서 을 읽는다.(링크) 세미나에 앞서 메모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려 했으나 글이 길어져 브런치에 정리. 인스타그램에는 제목이 없어도 되지만 브런치에 올리며 부득이 제목을 적는다. 저자는 1부 '함부로 말해도 되는 중국'에서 함부로 말하는 세태를 꼬집었지만 그래도 함부로 말해보자는 면에서 제목을 붙였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짱개주의'라는 도발적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사용해야 해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나는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를 고민하 온 응구기 와 시옹오가 말한 '투쟁의 언어'는 자국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7쪽) "짱개주의는 '칭키즘'에 없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 있다. 짱개주의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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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중국을 찾아서카테고리 없음 2022. 10. 11. 16:36
중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믿지 않는 사람이 셋 있다. 하나는 특파원, 하나는 경제 전문가, 마지막으로 서양 학자. 십수 년 넘게 특파원 생활을 했다는 사람도 수도 베이징과 몇 개의 주요 도시들 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가 중국 사회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통찰력을 가지고 중국 사회를 이해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경제 전문가는 더하다. 오늘날 중국에 대한 다양한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은 어떤가. 모두 미중관계의 틀에서 중국을 바라본다. 중국은 기존의 경제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경제적으로 분석하려 애쓴다. 게다가 언론에서 만나는 경제 전문가는 죄다 시장경제주의자 아닌가. 태반의 서양 학자들은 중국을 하나의 별종처럼 취급한다. 벌레 보듯 하거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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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버려야 한다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7
동양의 여러 사상가 가운데 말의 한계를 이야기한 사람은 적지 않다. 말 – 언어는 늘 제한적인 기능만 할 뿐이다. 세계의 참모습은 이 말 – 언어의 굴레를 훌쩍 넘어선다. 아마도 여기에는 중국 문자와 언어의 특징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문자는 단순히 기호가 아니라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림 가운데 하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늘 실패할 뿐이다. 세계는 언어 바깥에 있다. 참된 '도'는 무어라 부를 수가 없어. 참된 말다툼은 말로 하지 않지. 참된 사람다움은 사람다움 같지 않아. 참된 깨끗함은 겸손하지 않아. 참된 용기는 겁주지 않아.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다. 말다툼을 해서 가리면 실패한다. 사람다움을 지키는 사람은 정작 그렇지 않다. 깨끗하다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남을 겁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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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과 '아님'의 미학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6
이 문제는 단순히 음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구멍, 사람의 입[口]을 통해 울려지는 말[言]을 생각하라. 말 – 언어활동은 늘 어떤 제한성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그것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입을 열어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본질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라는 말과 그것이 아니라는 말 사이를 잘 보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지칭할 때엔 늘 어떤 덜어냄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아닌 것 – 덜어낸 것이 너무 큰 나머지 그것이라 지칭한 것을 가지고 그것이 아닌 것을 사유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가리킨 것을 가지고 가리킨 것이 가리키려던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보다는 가리키지 않는 것을 가지고 가리킨 것이 가리키려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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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4
도란 만물(자연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세계)을 존재∙변화시키는 근원적인 주재자인데, 그에 비해 인간은 이 도에 의해 존재∙변화되는 단순한 피주재자, 만물의 한 존재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소외되고 몰주체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이런 까닭에 도가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인간소외의 극복과 주체성의 획득이었는데, 그 기초에는 '도—만물'의 두 세계를 도려하는 독자적 존재론(두 세계론)이 깔려 있다. 그 목적은 단순히 만물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도에 도달하고 도를 파악함으로써 도가 세계에 가지는 전능한 힘(일체의 만물을 존재∙변화시켜 주재하는 힘)을 손에 넣고 그것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여 스스로 위대한 주재자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데 있었다. – , 미조구찌 유조 외, 25쪽. 인간의 한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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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 있어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3
"갖가지 다른 것에 숨을 불어넣은 것인데도 제 스스로 그런 줄 알아. 저마다 각기 제 생각을 가지고 있다지만, 누가 불어넣은 것일까?" 夫吹萬不同,而使其自己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바람은 하나이지만 제각기 구멍의 고유한 모양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지뢰地籟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뢰人籟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한 사람이 똑같은 숨으로 불더라도 운지법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난다. 그래서 저마다 제각기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데 남곽자기는 묻는다. 불어대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만약 불어대는 숨, 바람이 없다면 소리가 날 수 있을까? 구멍은 구멍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없다. '라'라는 음계를 내는 구멍이 있다고 치자. 그 소리가 그 구멍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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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소리들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2
어떤 책을 읽을 때 고비가 되는 지점이 있다. 첫 시작은 나름 괜찮은데, 그 시작의 매력을 다 누리기도 전에 구렁텅이에 빠지는 듯 당혹감을 선물하는 부분이 있다. 에서는 편이 그렇고, 에서는 와 가 그렇다. 십중팔구 를 일독하겠다는 마음을 꺾어버리는 데가 바로 여기 이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고. 그만큼 풍부한 감각을 선물해 준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완전히 다르다면, 전에 읽은 경험과 이번에 읽는 경험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면 어떨까? 당혹스러움만 남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을 읽는 경험이 그렇다. 읽으면서 한숨이 나오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읽고 나선 아찔한 나머지 멍-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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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을 때 잊어야 할 것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0
지금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라는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 장자와 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다. 어쩌면 그 사이의 간극은 끝내 좁힐 수 없을지 모른다. 텍스트, 를 아무리 헤집고 분석한다 하더라도 역사적 인물, 장자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거라는 말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에 지나치게 주목하지도 말아야겠지만, 거꾸로 장자 본인의 목소리를 찾겠다는 어리석은 시도로부터도 좀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서 말한 '유遊'가 얼마간의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조금은 떨어져서 를 읽을 필요가 있다. 너무 진지하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조금 비스듬히 를 읽어보자는 이야기이다. 습관적이고 손쉬운 읽기 방식에서 벗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