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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성거리는 소리들
    카테고리 없음 2022. 4. 29. 16:42

    어떤 책을 읽을 때 고비가 되는 지점이 있다. 첫 시작은 나름 괜찮은데, 그 시작의 매력을 다 누리기도 전에 구렁텅이에 빠지는 듯 당혹감을 선물하는 부분이 있다. <논어>에서는 <팔일>편이 그렇고, <구약성서>에서는 <신명기>와 <레위기>가 그렇다. 십중팔구 <장자>를 일독하겠다는 마음을 꺾어버리는 데가 바로 여기 <제물론>이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고. 그만큼 풍부한 감각을 선물해 준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완전히 다르다면, 전에 읽은 경험과 이번에 읽는 경험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면 어떨까? 당혹스러움만 남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제물론>을 읽는 경험이 그렇다. 읽으면서 한숨이 나오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읽고 나선 아찔한 나머지 멍-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말'이란 구체화한다는 것이고, 개념화한다는 뜻일 텐데. 이 당혹스러움 속에서 무엇을 찾아 말로 엮어낼 수 있을까? 말을 잊게 만드는 글이거늘!

     

    <제물론>은 난해한 우화로 시작한다. 두 인물, 남곽자기와 안성자유가 이야기를 나눈다.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보였어. 옆에서 서 있던 안성자유가 말했지. "어찌 된 일인가요? 모습은 마치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마치 죽은 재와 같습니다. 지금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어제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소요유>가 컴컴한 저 북쪽의 바다에서 시작했다면 <제물론>은 남쪽 성곽 바깥에 머물고 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책상에 기대에 앉아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낯설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남곽자기가 말했지. "좋은 질문이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알겠느냐? 너는 사람의 피리 소리는 들었어도 땅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지. 땅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안성자유는 남곽자기의 상태를 제대로 읽었다. 정말로 남곽자기는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뭔가 다른 인간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그 자신을 잃어버렸다.'[吾喪我] 자기 상실!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안에 또 다른 무엇을 발견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것' 혹은 '나'라고 부를 말한 것이 망가졌거나 훼손되었다는 것일까? 남곽자기의 말은 기묘하다. 이어서 그는 인뢰人籟, 지뢰地籟, 천뢰天籟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자기상실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

     

    '뢰籟'란 피리 혹은 피리소리를 가리킨다. 인뢰人籟란 사람이 불어서 내는 피리소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지뢰地籟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지에 이는 바람이 내는 소리를 말한다. 남곽자기는 바람이란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이라 말한다.[夫大塊噫氣,其名為風] 그런데 이 바람이 다양한 구멍들과 만나 소리를 낸다. 산을 가까이하면 안다. 산속에 들어가 보면 이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갖가지 틈으로, 구멍으로 바람이 미끄러져가며 소리를 낸다. 웅웅, 윙윙, 우우, 스스 … 바람 많은 날 산에는 누군가 있는 것만 같다. 때로는 누가 우는 듯, 웃는 듯, 고함치는 듯, 화를 내는 듯. 이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바람 때문에 산은 단지 흙덩어리 무더기와 우거진 나무들의 조합에 머물지 않는다.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을 바람이라 부르지. 고요하게 바람이 일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바람이 일면 모든 구멍이 울부짖는다. 휘익휘익 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테다. 깊은 숲 속,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에 여러 구멍이 있어. 어떤 것을 코 같고, 어떤 것은 입 같고, 귀 같고, 눈 같지. 술잔 같은 것, 절구통 같은 것도 있어. 웅덩이 같은 것도 있고 구덩이 같은 것도 있어. 아아 우우 호통치는 것 같기도 하고, 쉬익 휘익 성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이 여이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낄낄 깔깔 웃는 것 같기도 해. 앞에서 위잉 소리가 나면, 이어서 휘잉 하는 소리가 뒤따르지. 산들바람은 작게, 하늘바람은 크게 세상을 울리지. 그러나 아무리 사나운 바람이라도 멈추면 구멍들은 텅 빈 상태로 돌아갈 뿐이야. 그렇게 흔들흔들 살랑살랑 소리가 잦아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 세상은 이렇게 소리가 웅웅 울리는 곳이다. 그렇다면 대체 천뢰天籟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남곽자기의 대답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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