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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카테고리 없음 2022. 4. 15. 16:41

    오늘날 우리가 읽는 <장자>는 33편으로,  내편 7, 외편 15, 잡편 11편이다. 이렇게 나눈 것은 위진시대 곽상[郭象252?~312]으로 그의 <장자주>는 이후 <장자>의 표준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곽상 이전의 <장자>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없다는 뜻이다.

     

    <사기>에 따르면 약 10여 만 자의 <장자>가 있었다. 한편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52편의 <장자>가 있었다. 곽상은 52, 10여만 자의 <장자>를 33 6만 4천 여 자로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으로 분류해 놓았다. 이런 면에서 곽상은 <장자>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없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잡으로 나눈 것은 장자의 말에 가깝고 거리를 기준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내편>은 비교적 장자의 말이 확실한 것을, <외편>은 이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을, <잡편>은 이에 비해 더욱 멀다고 여겨지는 것을 묶어 놓았다. 구분에 따르면 <내편> 7편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편> 전체가  ‘장자의 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왜냐하면 모든 제자서諸子書가 그렇듯 그를 추종한 후학의 편집물로 보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子 불리는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명확하게 말하면 <장자>의 저자는 장자 본인이 아니다. 그것은 <논어>의 저자가 공자가 아니며, <맹자>의 저자가 맹자가 아닌 것과 같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장자>에서 장자의 말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제자서와 마찬가지로 <장자>는 장자가 세상을 떠난 , 그의 가르침을 쫓던 무리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되었을 것이다. 짧게는몇십 년,길게는 몇백 년에걸쳐. 결론적으로 <장자> 안에는 시대가 다른, 여러 저자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이런 곤혹스런 사실은 <장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텍스트 안에장자적이라고 할만한 부분과‘장자 학파’혹은 나아가장자의 이름을 빌린 누구 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장자의 ’, 혹은장자의 가까운 것으로 공인된 <내편>에 주목하는 것이다. 내편 7편은 그나마 어느 정도 통일된 내용으로 있다. 물론 편의 내용과 서술 방식에 이질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33 가운데 <내편>을 시작점으로 삼아도 무방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는 편이다. <내편> 7편을 깊이 이해한 <외편>이나 <잡편>을 통해 이를 심화하거나 보충하는 내용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장자> 전체를 가지 주제로 나누고 여기에서장자적인 ’, 혹은장자의 이라고 할만한 것을 뽑아 부분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더러, 왕왕 텍스트 바깥의 주제들이  끼어들기도 한다. ‘절대적 자유’, ‘만물의 평등’, ‘무위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장자>를 읽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절대적 자유만물의 평등 <장자>를 이야기하는 책에서 매우 쉽게 발견할 있는 주제다. 이는 각각 <장자: 내편>의 첫 두 편, <소요유>와 <제물론>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내편> 7편을 하나로 엮어보면 이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뒤에 나오는 <양생주>, <인간세> 등은 이와 다른, 때로는 정반대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여기에는자유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장자에 투영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언급해둔다. 하여 <내편>을 주목하자는 것은 기존 <장자>의 이미지를 내려놓아 보자는 뜻이기도 하다. 무수하게 떠도는 <장자>에 대한 말들을 접어두고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직접 대면해보자. 

     

    결국 우리는 ‘장자라는 인물’보다 ‘<장자>라는 책’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장자는 아득하나 <장자>는 바로 눈앞에서 말을 건다. <장자>를 비판적으로 읽고 이를 통해 장자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보도록 하자.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장자가 무슨 말을 했나 아니라, ‘《장자》는 무슨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다. <장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우화들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의 해석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는 이 길이 반가울 테지만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다. 이 길이 정도正道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숱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 참고할만한 여러 예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장자>는 번역마다 크게 서로 다르다. 해석하는 사람마다 이야기하는 바도 다르다. 여력이 된다면 다른 번역과 해석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차이는 곧 풍부함이기도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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