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장자를 찾아
    카테고리 없음 2022. 4. 15. 16:28

    장자는 역사적 인물이다. 상상으로 지어낸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는 뜻. 그러나 그에 대한 역사 기록은 매우 짧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채 300여 자도 되지 않는 짧은 글에서 역사 속의 장자를 추적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인물을 기록한 책이다. 장수, 책략가, 정치가 여기에 장자와 같은 학자들까지 기록되었다. 장자의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훗날 장자의 명성에 비해 사마천은 장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장자에 대한 이야기는 <노자∙한비열전>에 짧게 실려있다. ‘노자’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비’는 <한비자>의 저자로 유명한 한비자를 가리킨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 많은 인물을 다루면서 몇 명을 한데 묶어 한 편의 글로 짓기도 했다. <노자∙한비열전>역시 마찬가지. 이 글에서는 총 네 명이 등장한다. 노자와 장자, 신불해와 한비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런 까닭에 네 명의 이름을 따 <노∙장∙신∙한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임의로 붙인 제목일 뿐, 정식 명칭은 <노자∙한비열전>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노자와 한비자라는 말씀. 안타깝게도 장자는 조연에 불과하다. 

     

    노자는 장자와 더불어 도가道家의 주요 인물로 알려져있다. ‘도가’란 ‘도道’를 핵심 개념으로 삼고 이를 연구한 학파를 말한다. 훗날 민간신앙의 형식을 갖춘 종교 도교道敎와는 다르다. 한편 신불해와 한비자는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비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도 불릴 정도로 권력을 냉철하게 연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며 가져야 할 다양한 태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상한 조합이다. 흔히 도가는 자유를 주장했으며, 법가는 강력한 통제를 이야기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 둘을 함께 묶었다. 노자의 도자와 한비자의 법가를 함께 실었던 의도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노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문제 삼아야 한다. 흔히 <노자>를 일러 무위자연無爲自然, 평화와 자유를 노래한 책이라 한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병법의 지혜를 담아 승리의 기술을 전하는 책이라는 해석이나, 천하를 지배하는 절대적 권력자를 위한 통치술을 담은 책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자와 한비자를 한데 묶은 것이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노자>를 어떻게 이해하건 간에, 적어도 사마천은 노자와 한비자를 함께 서술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노자> 나아가 도가에 대한 적절한 해석일까? 이에 대해서는 졸고 <노자의 맨얼굴>을 참고하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자다. 노자와 한비자를 한데 묶을 수 있다 치고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장자는 왜 끼어 있을까? 이는 사마천이 장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까닭이다. 사마천은 장자가 노자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보았던 까닭에 그에 대한 기록을 노자 뒤에 간단히 붙였다.


    노자와 장자에 대한 복잡한 철학적 논의는 생략하도록 하자. <노자>와 <장자>의 선후문제, 상호간의 영향관계 등에 대해 여러 논의를 펼칠 수 있을 테다. 여기서는 이러한 논의에 빠지지 않고 장자와 그의 글, <장자>에만 오롯이 집중하려 한다. 따라서 장자와 노자를 구분해 서술하고자 한다. 다만 하나 짚어둘 것은 장자야 말로 법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장자는 국가, 법, 체제, 정치 등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이들, 노자나 한비자 따위와 함께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크게 실망하지 않았을지. 


    따라서 사마천의 기록을 읽을 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의 기록을 참고하되 합당한 기록인지 질문을 던지며 읽어야 한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을 기술하는 때는 장자 사후 수 백 년이 흐른 뒤였다. 게다가 사마천은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객관적을 서술을 목적으로 삼는 역사가가 아니었다. 즉, 그의 글을 읽되 비판적 독해가 필요하다는 말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의 기록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장자에 대한 거의 유일한 역사 기록인 까닭이다. 장자는 <장자> 안에서도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장자>를 통해 구성해볼 수 있는 장자의 모습은 매우 제한적이다. 장자에게는 아내가 있었으나 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가까운 친구 혜시가 있었으나 그 역시 장자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이 있었으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매우 가난하여 때로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는 것 정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장자와 우리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상세하고 온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역사에 남아 전해지는 조각을 기워하며 그의 모습을 추적해볼 수밖에.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