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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찔하게 얼얼하게
    카테고리 없음 2022. 4. 22. 13:46
    저 멀리 아득한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 그 이름은 곤인데,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지. 이 물고기는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은 붕이야.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가면 날개는 마치 하늘의 구름처럼 보여. 이 새는 바다를 뒤흔들며 아득한 남쪽 바다로 날아가. 아득한 남쪽 바다란 천지天池, 하늘의 연못이라 할 만한 곳이야.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為鳥,其名為鵬。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南冥者,天池也。


    <장자>의 시작은 너무나 거대하다. 북쪽 바다의 커다란 물고기가 붕이 되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바다, '북명北冥'은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장자는 북쪽 바다를 그저 상상해보았을 뿐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그렇고 땅은 네모나다. 모난 이 땅에도 한계는 있겠지. 바다란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지금이야 바다 건너 또 다른 대륙을 상상하고,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을 다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인에게 바다란 그저 끝없이 막막한 공간이었다. 결국 바다란 이 땅, 사람이 사는 세계 바깥을 의미한다. 깊이는 물론, 끝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 <장자>의 시작은 아찔하다.

     

    그래서 명冥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아득한 세계를 묘사하는 말이다. 성현영은 이를 '명막무애溟漠無涯'라고 풀이했다. 끝없이 아득해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인식 불가능한 어떤 세계, 거기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신기하다. '곤鯤'! 후대의 연구자 가운데는 어떤 특정한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작은 물고기'[小魚] 혹은 '물고기의 알'[魚卵]을 의미한다고 보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장자>는 터무니없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물고기의 알이, 그 작은 물고기의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곤'은  깊은 심연에 사는 어떤 이형異形의 생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녀석이 새로 변한다. 물고기가 새가 되는 이야기!  수중생물이 공중으로 도약한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은 그의 비늘과 신체가 물 없이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가미는 물속에서만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창공의 신선한 공기는 그에게 독이 된다. 그러나 이 기이한 존재는 그런 물고기로서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이 거대한 존재는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다. 장자는 이 새에게 붕鵬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곤이 붕이 되는 이야기. 장자는 물고기와 붕새라는 전혀 다른 존재를 붙여놓고 이를 변화(化)라 말한다. 따라서 장자가 말하는 변화란 어떤 존재가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의 속성, 알 수 없음[不知]이란 바뀌지 않는다. 이 존재는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른다. 그렇게 남명南冥 또 다른 세계의 저편으로 날아간다. 


    이 광대함! 북명의 심연에서 남명의 창천으로, 이 깊이와 높이 아득한 넓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크기! <장자>의 시작은 이렇게 아찔하며 얼얼하다. 그러나 곤/붕의 비상은 그냥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물이 충분히 많지 않으면 커다란 배를 띄울 수 없어. 바닥에 움푹 파인 곳에 잔을 엎지른다고 해. 그럼 거기에 티끌을 배로 삼아 띄울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잔을 띄워보겠다고 하면 바로 바닥에 닿아. 얕은 물에 큰 것을 띄우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바람이 충분하지 않으면 커다란 날개를 띄울 수 없어. 붕새가 구만리를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아래에 있다는 거야. 그제야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면 거칠 것이 없지. 그렇게 붕새는 남쪽으로 날아가.

    且夫水之積也不厚,則負大舟也無力。覆杯水於坳堂之上,則芥為之舟,置杯焉則膠,水淺而舟大也。風之積也不厚,則其負大翼也無力。故九萬里則風斯在下矣,而後乃今培風;背負青天而莫之夭閼者,而後乃今將圖南。

     

    거대한 존재가 날아오르려면 그만큼 큰 바람이 있어야 한다. 마치 커다란 물이 있어야 커다란 배를 띄울 수 있는 것처럼. 커다란 배를 띄우려면 커다란 물로 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바람이 부는 들로 나가지 않는다면 이 커다란 날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엄청나게 커다란 연을 날리려는 사람을 상상하라. 좁은 골목길에서 그 연을 날리려 한들 제대로 날릴 수 있겠는가? 넓은 들, 가로막힌 것이 없는 광활한 곳으로 나가야 한다.


    붕새는 붕새이기 때문에 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구만리 창천을 날아 올랐기에 붕새가 된 것은 아닐까? 대체 곤에게는 언제 날개가 솟아났을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곤은 구만리 창천을 날아가는 날개를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곤붕의 크기는 단순히 물리적 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다. 구만리 창천을 날아오르는 그의 날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날개는 구만리를 날아오르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이 거대한 날개를 펴보지 못한, 작은 새들의 비웃음이 섬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결코 멀리 날아보려 하지 않았다. 장자의 말이 허망하게 보인다면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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